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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당 김보균 송선비(桂堂金寶均 頌善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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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4-09-22 17:07 조회7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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桂堂金公寶均頌善碑

桂堂金公寶均(계당김공보균)의 本貫(본관)은 光山(광산)이니 新羅(신라)의 太輔公諱(태보공휘) 閼智(알지)가 藝祖(예조)이고 神武王(신무왕)의 第三子(제삼자) 諱興光(휘흥광)이 광주(光州)의 平章洞(평장동)에 遯居(둔거)하시어 光山金氏(광산김씨)의 分貫祖(분관조)가 되었다.
그 後(후) 世世(세세)로 煊爀(훤혁)하여 東方(동방)의 名閥(명벌)이 되었는데 進士(진사) 諱址鉉(휘지현)이 高祖(고조)이고 諱熙秀(휘희수)의 孺人(유인) 南陽房氏(남양방씨)가 考○(고비)이다.
公(공)은 長男(장남)으로 舊韓(구한) 高宗戊申(고종무신) 一九○八年九月十三日에 出生(출생) 어려서부터 남달리 聰明(총명)하여 初等敎育(초등교육)을 마친 後(후) 獨學(독학)으로 官吏養成所(관리양성소)의 入所試驗(입소시험)에 合格(합격) 一年 修了(수료) 後(후)에 任官(임관)되었고 光復後(광복후)에는 珍島(진도) 靈光(영광) 潭陽(담양) 郡守(군수)와 光州副市長(광주부시장) 等(등)을 歷任(역임)하여 가는 곳마다 寡默(과묵)하고 誠勤(성근)하여 淸白(청백)하고 剛直(강직)한 性格(성격)과 言行(언행)으로 治績(치적)을 擧揚(거양)하여 두터운 信望(신망)을 받았다. 五十三歲의 나이에 敢然(감연)히 官職(관직)에서 自退(자퇴)하여 爲先(위선)과 後進養成(후진양성)에 獻身(헌신) 할 것을 決意(결의)하고 約(약) 二十年間의 歲月(세월)에 許多(허다)한 業蹟(업적)을 이루었으니 그 槪要(개요)를 論擧(론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光復後(광복후)에 派祖郞將公宗中(파조랑장공종중)의 花樹會(화수회)를 結成(결성) 諸宗(제종)과 合議(합의)하여 鷄林洞(계림동)에 宗會閣兼育英齋(종회각겸육영재)를 建立(건립)하기로 하고 垈地(대지)와 建築費(건축비) 一部(일부)를 提供(제공)하여 建立(건립)하였으며 後續財政(후속재정)의 難關(난관)에 逢着(봉착)하여 實效(실효)를 거두기 어렵게 되자 다시 數億(수억)의 鉅貨(거화)를 獨擔(독담)하여 芝山洞(지산동)에 瑞元祠(서원사)를 세워 郞將同正公(랑장동정공) 諱(휘) 珪(규)와 贈左議政大提學(증좌의정대제학) 光山君諱漢老(광산군휘한로)를 享祀(향사)하고 아울러 弘益奬學財團(홍익장학재단)을 創設(창설) 復性齋(복성재)를 지어 後學(후학)의 育成(육성)을 爲(위)하여 寄宿舍(기숙사)의 提供(제공)과 奬學金(장학금)의 支給事業(지급사업)을 實施(실시)하고 있으며 鄕里(향리)인 舟山(주산)에는 宗中(종중)의 會合(회합)과 悅話(열화)의 자리를 마련하기 爲하여 觀湖齋(관호재)를 建立(건립)하고 維持(유지)를 爲하여 田畓(전답) 十餘斗落(십여두락)을 奉納(봉납)하였고 또 先祖(선조) 瓏齋公(롱재공)께서 構築(구축)하여 當時(당시)의 諸賢(제현)과 詩禮(시례)를 講討(강토)하고 從子(종자) 忠壯公(충장공)이 受學(수학)과 釣魚(조어) 奉親(봉친)한 故事(고사)를 一名(일명) 釣臺(조대)라고도 稱(칭)하는 玲瓏臺(영롱대)의 移建(이건)과 그 直舍(직사) 및 瓏齋公(롱재공) 墓閣(묘각)의 直舍(직사) 新築(신축) 等(등)을 비롯 庚寅亂(경인란)에 燒失(소실)되었던 梨峙(이치) 參判公墓閣(참판공묘각) 重建(중건)이며 監務公(감무공) 및 그 兩胤(양윤)의 設壇奉祀(설단봉사)를 비롯 竪碑治墓(수비치묘) 直舍建立祭田(직사건립제전)의 訴追還收(소추환수)와 義烈祠(의열사) 財産(재산)의 管理(관리) 忠壯祠(충장사) 營建(영건) 等(등) 許多(허다)한 宗事(종사)에 恒時(항시) 앞장을 섰으며 다시 全國(전국) 光山金氏大宗會(광산김씨대종회)의 都有司(도유사)로 推戴(추대)되자 率先(솔선) 鉅金(거금)을 獻誠(헌성)하고 諸宗(제종)의 合力(합력)을 얻어 梧峙洞(오치동)에 大宗閣(대종각)을 建立(건립)하였다. 公(공)은 現在(현재) 八旬(팔순)을 내다보는 高齡(고령)인데도 恒時(항시) 爲先(위선)과 愛族(애족) 그리고 後進養成(후진양성)의 一念(일념)에 불타고 있을 뿐만 아니라 鄕里(향리) 田庄(전장)의 光州(광주) 移買(이매)와 勤儉治家(근검치가)의 餘蓄(여축)을 奉先育英(봉선육영)은 勿論(물론) 救恤宗敎(구휼종교) 等(등)의 公益(공익)에도 貢獻(공헌)한바 至大(지대)하며 그 高尙(고상)한 人格(인격)과 奉仕(봉사)의 精神(정신)에 世人(세인)의 推仰(추앙)을 받음은 勿論(물론) 靑少年(청소년)들의 師表(사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지난 겨울 瓏齋公(롱재공)의 墓祀時(묘사시)에 宗議(종의)가 齊發(제발) 公(공)의 頌善碑(송선비)를 세워 後孫(후손)에게 勸奬(권장)의 義(의)를 심어주자고 合議(합의)가 되었다. 公(공)은 國家變亂(국가변란)의 激動期(격동기)를 屢次(누차) 겪으면서도 明哲(명철)한 判斷(판단)과 誠實(성실)한 心德(심덕)으로 無難(무난)히 넘겼으며 겨우 知命(지명)을 넘어선 나이에 勇退(용퇴)하여 많은 업적(業蹟)을 남긴 것은 實(실)로 公의 天稟(천품)이 卓越(탁월)한데 있던 것으로서 우리 宗中(종중)을 爲하여 欣幸을 禁(금)할 수 없는 바이다. 그리고 公의 그만한 業蹟(업적)을 올리는데는 背後(배후)에서 묵묵히 內助(내조) 해왔던 夫人(부인) 原州元氏(원주원씨)의 힘도 컸으니 夫人(부인)은 卓越(탁월)한 孝行(효행)으로 道誌(도지)에 오르기도 했거니와 三男五女의 어머니로서 上奉下率(상봉하솔)과 齊家敦族(제가돈족)에 婦德(부덕)이 높으신 분이다. 이 비를 세움에 있어서 熙善(희선) 應圭(응규) 奉圭(봉규) 紋圭(문규) ○圭(진규) 鍾碩(종석) 鍾杓(종표) 鍾哲(종철) 鍾翊(종익) 琓淳(완순) 諸宗(제종)의 勞苦(노고)가 많았고 碑(비)가 갖추어지자 宗中(종중)의 慫慂(종용)에 依(의)하여 不肖(불초) 鍾琯(종관)은 事蹟(사적)의 大綱(대강)을 謹述(근술)한다.


光山金氏郞將公派瓏齋公宗中(광산김씨랑장공파롱재공종중)
都有司(도유사) 鍾琯(종관) 삼가 지음.
信川(신천) 康仁煥(강인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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