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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발(潑) 무과급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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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5-05-06 18:17 조회4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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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공(휘 덕봉)의 후손 휘 발(潑)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정경운(鄭慶雲1556-?)의 고대일록(孤臺日錄)에 1596년 2월 3일(음력) 담양(潭陽) 金城山城 아래의 선달(先達) 김발(金潑)의 집에서 유숙(留宿)했는데 그는 아주 후(厚)하게 나를 대접하였다고 하였다.

고대일록에 나오는 김발은 사의공 휘 덕봉의 후손으로 중종(中宗) 35년 식년시(式年試) [생원] 2등에 입격한 휘 념(恬)의 증손으로 선달(先達)은 문.무과(文.武科)에 급제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므로 휘 발(潑)이 무과(武科)에 급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휘 潑은 선무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출전: 선무원종공신록권)

(*조선시대 武科시험 801회중 17.3%인 138회분만 傳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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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고대일록(孤臺日錄) 제2권 병신(丙申, 1596) 봄 2월〔春二月〕

○ 2월 3일 신축(辛丑)
담양(潭陽)에 이르렀다. 금성산성(金城山城) 아래의 선달(先達) 김발(金潑)의 집에서 유숙하였다. 그는 아주 후하게 나를 대접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산성이 험준하고 냇물의 흐름이 활발하여 참으로 이른바 하늘이 만든 험함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만약 뛰어난 장수가 그 지역을 막는다면, 아마도 백성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으로 현명한 보필이 없고 밖으로 어진 장수가 없으니,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장성산성(長城山城)은 이곳에 비해 더욱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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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일록 (孤臺日錄)
所 在 地 :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

고대(孤臺) 정경운(鄭慶雲1556-?)이 지은 책으로 선생이 직접 쓴 것을 엮은 존서본인데
10대손이 보유하고 있다.
선생은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의 손자로 선조조에 학행으로서 동몽교관을 제수받았고,
임진왜란때는 스승인 내암 정인홍(鄭仁弘)을 도와 창의(倡義)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남계서원의 위패를 유림 진경윤(陳慶胤)등과 함께 연화산에 가매안 하였다가 구래로 옮기는 등 위패의 훼손을 예방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중 함양읍을 중심으로 고장을 지키면서 도내에 격문을 전하고 이웃 고을에 통문을 보내어 의거할 것을 촉구하고 의병군의 소집유사로서 계속 의병을 모집하였고 무기와 식량을 확보하여 전선에 보급하는등 그 공로가 지대하였다.

이 책은 4책 54쪽으로 선조25년(1592) 4월 23일부터 광해군 원년(1609년) 10월 7일까지 18년간 임진왜란중 경상우도 지역에서 자신이 체험한 일과 가족간의 신변이야기, 의병들의 활동상황과 왜적들의 동태와 당시 보고 들은 국내 사정들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책이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본 책에 대한 연구를 하여 함양문화원을 통하여 서술하였으며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가 남명집연구 2∼3집에 영인하여 실었다.
임진왜란사와 내암 정인홍 학파, 나아가 남명학파의 연구에 있어 필요한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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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념(金恬) 사마방목기록
[생원시] 중종(中宗) 35년(1540)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2등(二等)
字: 약천(若天)
本貫: 광산(光山)
거주지: 담양(潭陽)

선발인원: 100명
전력: 훈도(訓導)

[가족사항]
[부]
성명 : 김윤옥(金潤屋)
품계 : 승의랑(承議郞)
관직 : 행은산훈도(行殷山訓導)

[출전]
『가정19년경자식2월23일생원진사방목(嘉靖十九年庚子式二月二十三日生員進士榜目)』
(국립중앙도서관[古貴6024-221])
/ 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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