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자료

휘 민선(敏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5-09-11 20:57 조회502회 댓글0건

본문

김민선 (金敏善 1542~1592)
인천 도호부사. 도승지.
字는 달부(達夫).
아버지는 1543년(中宗38) 武科에 壯元급제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 행덕천군수(行德川郡守) 김상겸(金尙謙)이요, 어머니는 정건(鄭鍵)의 딸이다.
조부는 전력부위(展力副尉)와 덕원부사(德源府使)를 지낸 김석경(金碩卿)이요, 증조부는 공조좌랑 김한수(金漢秀)이고 고조부는 1453년(端宗1) 武科에 壯元하여 좌익원종공신(左翼原從功臣) 2등에 책록된 판관(判官)과 자산군수(慈山郡守)를 지낸 김계원(金繼元)이다.

김민선(金敏善)은 1542년(중종 37) 서울에서 태어나, 1564년(明宗 19) 식년시에서 생원 3등으로 입격하고, 1572년(宣祖 5)에 별시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여 집의(執義)가 되었다.

1581년(선조 14)에 경성(鏡城) 판관(判官)의 직책을 고의로 버리려고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591년(선조 24)에는 헌납(獻納)에 제수되었다.
헌납으로 재직하면서 사간원과 사헌부가 함께 정철(鄭澈)을 탄핵하는 데에 참여하여 정철(鄭澈), 백유함(白惟咸), 유공진(柳拱辰), 이춘영(李春英) 등을 유배시켰다.

『인천부 읍지(仁川府 邑誌)』에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인천 도호부사로 부임하여 문학산성(文鶴山城)을 지키면서 여러 차례 왜적을 무찔렀다.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왜적을 무찌른 전공을 가상히 여겨 나라에서는 도승지에 추증하였으며, 인천 주민들은 문학 산성 정상에 안관당(安官堂)이라는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인천도호부 주변 마을 사람들이 매년 두 번씩 제사를 올렸으며 일제강점기에 안관당이 불타 버렸음에도 안관당제를 유지해 왔으나 문학산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그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
인천광역시사 편찬 위원회, 『인천광역시사』6-문화유산과 인물(인천광역시, 2002)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한국 역대 인물 종합 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한국 향토 문화 대전 디지털 구로 문화 대전(http://guro.grandculture.net)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보학자료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