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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전 나주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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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암 작성일17-12-19 16:54 조회45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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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일보 1월 11일자 책소개 기사입니다

시와 함께 과거로 떠나 본 400년 전 나주
시서 김선 선생과 함께하는 400년전 나주를 만나다

평생을 나주에서 생활하다 삶을 마친 선비 시서 김선. 그는 1568년 9월 20일 나주에서 태어나 1642년 2월 16일 오락정에서 75세로 생을 마감했다. 지금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야지식인 정도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선조, 광해, 인조 등 세 임금을 거쳐 임진왜란ㆍ정묘호란ㆍ병자호란 등 난세의 격량을 겪으면서도 올곧게 살다 간 나주의 선비다.

그가 남긴 1200여개의 시 가운데 현재의 관점에서 나주의 역사와 문화를 얘기할 수 있는 것을 골라 담은 책이 출간됐다. 바로 '시서 김선 선생과 함께하는 400년 전 나주를 만나다'다. 책은 저자가 나주투데이에 연재한 원고를 정리해 발간한 것이다.

김선 선생이 생전 남긴 시는 가족관계ㆍ이별ㆍ우국ㆍ친구ㆍ풍경ㆍ인생 등 소재가 다양하다. 그는 흔히들 광산김씨 12대 생진사터라고 말하는 교동에서 살았다. 강항 수은, 반환 홍천경 등과 경현서원에서 공부하고 20세 영광감시를 시작으로 무장감시, 정읍감시, 사마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회시ㆍ별시에 합격했다.

1608년 광해군 즉위 후 이이첨ㆍ정인홍을 비판하다 일정 기간 과거를 못보게 하던 벌인 정거를 당하고, 1614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한 완평부원군 이원익이 귀양가자 부당함을 상소하다 성균관에서 삭적돼 과거를 포기, 세상사와 단절하며 평생을 학문에 전념했다.

저자는 "김선 선생의 글들을 통해 그가 재야의 지식인으로 남아 공부와 가르침을 일생의 낙으로 삼아 고결한 삶을 살았던 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며 "능력은 있지만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하는 스트레스를 스스로 이겨내고 장수를 누린 시서 선생의 삶의 모습은 급변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자는 "그의 시를 보고 있노라면 당시의 나주 전경이 머리 속에 펼쳐진다"고 덧붙였다. 저자의 말대로 그의 시 속에는 나주가 눈에 그려질만큼 생생한 풍경들이 가득하다.

그의 기록을 통해 현재 나주천이라 불리는 개천이 당시에는 완사천으로 불리고, 나주인들의 놀이터로 이용됐다는 점 등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세금에 힘겨워하는 백성들의 숨소리, 가치관에 맞지 않는 상황에 목숨 거는 선비의 기개도 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책은 과거의 나주를 만날 수 있는 다리가 되어준다.

저자 김종순은 목포대학교 사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 사학과를 수료했다. 나주시청에서 1991년부터 문화재 관련 일을 25년째 진행하고 있다. 나주와 관련된 지역사(나주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 그는 현재 나주시청 학예연구사로 근무중이다. 강송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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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김종섭교수님의 국역시서유고는 어렵게 구해 보고 있습니다
신문기사를 보고 오늘 나주시청에 근무하는 저자 김종순 팀장에게
전화를 하니 소량만 찍어서 재고가 없다고 하시면서
대신 출판사에 넘기신 PDF 파일을 고맙게도 보내주셨습니다.
총 224페이지인데 국역시서유고에서 나주관련 55수를 뽑아
역사적인 해설을 가한책입니다.(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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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시서 김선 선생과 함께하는 400년전 나주를 만나다』는 나주투데이에연재한 원고를 다시 정리하여 책으로 발간한 것입니다. 시서 선생이 남기신 천이백여수의 시 가운데 현재의 관점에서
나주의 역사와 문화를 얘기할수 있는 것을 골라서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시서 선생은 평생을 나주에서 생활하면서 삶을 마치신 선비입니다.
1568 년 9월 20일 나주에서 태어나
1642년 2월 16일 오락정(五樂亭)에서 75세의생을 마감한 호가 시서(市西)입니다.
지금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야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선조 광해 인조의 세 왕조를 거치고 임진왜란정묘호란·병자호란 등 난세의 격랑을 겪으면서
올곧게 살다 가신 나주의 선비입니다.

생전에 1,200여수의 시는 가족관계 61, 이별시 64, 우국 85, 친구 239, 풍경 286, 인생 315 등
다양한 작품을 썼는데 선생님의 시를 보고 있노라면 당시의 나주 전경이 머리 속에 펼쳐집니다. 이 분이 사신 곳은 교동이었습니다.
흔히들 광산김씨 12대 생진사터라고 하는 곳이죠.

선생은 강항 수은, 반환 홍천경 등과 경현서원에서 공부하였으며 20세때 영광감시를 시작으로
무장감시(1588) 정읍감시(1608) 1605년 사마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회시·별시에 합격하였습니다.

1608년 광해군 즉위후 이이첨·정인홍을 비판하다 정거당하고 1614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한
완평부원군 이원익이 귀양가자 부당함을 상소하다 성균관에서 삭적 되자 과거를 포기하고 세상사와 단절하면서 평생을 학문에 전념한 분입니다

선생은 장유·임억령·임서·윤휘·임회·정홍명·나해봉 등 당대의 문인 학자들과 교유하였습니다.
특히 선생은 오현서원 청액소(경현서원) 동방의 오현 배향을 위한 글(청오현종사소)
나주목사 유석증의 제문, 남이공 목사때 수련당 상량문, 진전가요(태조 이성계의 초상이 정유년에 함흥으로 옮겼다가 을묘년 가을에 봉환하여 안치하고 도내 선비에게 가요를 지어 받치게 할 때 쓴 글) 전라우영 영청을 새로 지을 때 쓴 권선문, 서원고적(경현서원에 대한 글) 등 많은 글 들을
남겼습니다.

『시서유고』는 시서 김선 선생이 남기신 글을 모아 책으로 낸 문집입니다. 한문으로 쓰여진
시서유고는 2003년 나주시에서 국역하여 책으로 발 간하여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간의 과정을 살펴보면 나주의 선인들이 남기신 책들을 번역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지방자치의
기초적인 자료확보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동모씨가 실무를
맡아 공무원 교육원에서 중국어를 공부할 때 만난 동신대 김종섭교수(작고)에게 의뢰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김종섭교수는 열악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시서유고』 원본을 입수하여 수차례의 고증과 대조를 통해서 번역에 최선을 다해 빛을 보게 하였습니다.

수백년 전에 이 땅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 후손들이 아련하게 당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도록 해주신 조상님의 은덕에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 선생이 살다간 그 시절 양반의 자식으로 태어나 과거급제를 통해서 입신양명하고자 했던 꿈을 불의의 사건으로 접고 요즘 흔한 표현“
재야의 지식인”으로 남아서 공부와 가르침을 일생의 낙으로 살다간 고결한 삶을 살았던
분이었음을 선생이 남기신 글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능력이 있는데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을지 그런 중압감을 스스로 이겨내고 장수를 누린 시서선생의 삶의 모습은 급변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점이 제공합 니다.선생의 기록을 통해서 나주천이라 불리우는 개천이 당시에는 완사천으로
불리우고 나주인들의 놀이터 였음은 새롭게 인식되는 부분입니다.

또한 당시의 지식인들의 인적교류와 놀이문화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시풍속을 보여주기도 하며 또 한 장의 책장을 넘기면 가혹한 세금에 힘겨워하는 백성들의 기나긴 숨소리가, 선생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정책에 목숨을 거는 선비의 기개가 책장 곳곳에 펼쳐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강호제현의 질정을 바랍니다.
수백년전 나주에서 살다 가신 선생의 책을 통해서 만난 시간은 오랜만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박동모 형과 이 책을 번역하신 김종섭 동신대 교수가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여
너무나 아쉽고 마음이 아픕니다. 두분의 명복을 빕니다.
여기에 소개되는 시의 번역문은 2003년 나주시에서
국역 발간한『 국역시서유고』에서 인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2016년(병신년) 12월
김종순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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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작성일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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