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자료

금자광록대부 참지정사 상장군(參知政事上將軍) 김공(金公)의 인씨 부인(印

페이지 정보

작성자 情岩 작성일07-01-02 15:31 조회1,411회 댓글1건

본문

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文集) 제35권 국역본입니다[이규보(李奎報)저]

부인은 성이 인씨(印氏)며 모현인(某縣人)으로 모관(某官) 모(某)의 손자요, 좌우위 대장군(左右衛大將軍) 휘(諱) 영보(榮寶)의 둘째 딸인데, 지금 참정상국(參政相國) 김원의(金元義)의 배필이다.
부인은 비녀 꽂을 나이에 김공(金公)에게 시집왔다. 부인은 본가에 있을 때부터 부모 섬기기를 매우 독실히 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기를 매우 화목하게 하였는데, 출가하자 부모 섬기던 정성으로 시부모를 섬기되 예절을 지키고 더욱 공경하였으며, 형제간에 화목하던 것을 옮겨서 남편의 친속에게 화목하되 더욱 후하게 하였다. 그리고 비첩(婢妾)을 거느리는 데 있어서는 너그럽게 하고 가혹하게 아니하였으므로 아랫사람들이 비록 무서워하지만 싫어하지는 않았다.
참정공(參政公)은 원래 장관(將官) 출신이라, 무릇 정벌이나 수자리에 나갈 때의 장비나 준례에 따른 잔치의 비용이 호번하였는데, 부인은 그것을 모두 손수 마련하되 정밀하게 하지 않음이 없고, 조금도 게으른 기색이 없었다. 공이 재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부인의 내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이 본래 부유하였으나 부인은 부유하다고 해서 여자가 할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손들이 그것을 말리자 부인은 말하기를,

"길쌈과 누에 치는 일은 여자의 직업이다. 마치 너희들의 문서(文書)나 필연(筆硯)과 같은 것인데, 어찌 잠시인들 놓을 수 있겠느냐?"
하였다. 그러다가 공이 정승이 된 뒤에야 그 일을 친히 하지 않고 비첩들에게 일체 맡기었다. 만년에는 부처 받들기를 더욱 정성으로 하여, 항상 《금강경(金剛經)》을 읽었다.
큰 아들 공수(公粹)는 진사로 급제하여 지금 내시감문위 녹사참군사(內侍監門衛錄事參軍事)가 되어 직한림원(直翰林院)을 겸하였으며, 작은 아들 모(某)는 장관(將官)이 되어 숙위(宿衛)의 일을 맡았다. 딸은 유창서(劉昌緖)에게 출가하였는데, 유창서는 지금 장군이 되었다.
공수가 나와 더불어 한림원의 동료이기 때문에 와서 명을 청하므로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집을 부유하게 함은 재물만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라 덕성이 고요하고 전일한 때문이었고, 나라에 공 세움은 자신이 꼭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어질게 두면 된다. 아! 남자 부럽지 않을 일을 부인은 하였도다.

金紫光祿大夫?知政事上將軍金公夫人印氏墓誌銘

夫人姓印氏某縣人也某官某之孫左右衛大將軍諱榮賓之第二女而今?政相國金諱元義之配也旣?歸于金公夫人自在家事父母岳友兄弟甚穆及嫁移所以事父母者事舅姑有禮而加敬焉移所以穆兄弟而惇夫之族加厚焉其御婢妾寬重不苛細故下雖畏而不厭?政公起自將官凡征戌裝?及隨例甫醵宴飮之費煩浩不細夫人皆手親之無不精辦?無倦容公之歷位至宰相夫人有內助焉家本饒財然不以富故手離女工子姓諫止之夫人曰紡績蠶織婦職也類若輩之文書筆硯烏可須臾離耶及公之至相位然後輟而不親一委妾侍晩節奉佛尤精常讀金剛經生子曰公粹進士登第今爲入內侍監門衛錄事?軍事兼直翰林院次曰某爲將官備宿衛女子適劉昌緖今爲將軍公粹以與予同寮內翰故來乞銘銘曰
肥其家不係財秉德之靜專功於國不必身有子之才賢嗚呼男子之無羨夫人其有焉

〔출전:『東國李相國集』권35〕

묘지명은 이규보(李奎報)의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35와 『동문선(東文選)』 권122에 실려 있으며, 이규보가 작성하였다. 작성연대는 고종대로 추정되나 자세한 연기는 미상이다.
묘지명 주인공 인씨(印氏 : ?~?)는 영보(英寶)의 둘째 딸로서 김원의(金元義)의 처이다. 본관은 미상이다. 2남 1녀를 두었다. 큰 아들은 공수(公粹)이며, 작은 아들은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다. 딸은 유창서(劉昌緖)에게 출가하였다.
묘지명은 부인이 가정에서 부도(婦道)를 다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남편 김원의의 묘지명이 있다


댓글목록

晟峰님의 댓글

晟峰 작성일

晟峰 (2005-12-13 12:30:38)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귀한 자료를 올리셨군요.

종 종 좋은 글과 귀한 자료들 부탁합니다.

보학자료 목록

Total 439건 20 페이지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