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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공 휘 양감에 관한 중국측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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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7-01-02 23:09 조회1,6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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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이 글은 <宋大詔令集>237 政事90 4裔10 高麗에 있는 글로 문안공(휘 양감)께서 1073년(文宗 27)에 宋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중국 각지의 사찰에서 황제를 위해 축성(祝聖)의 재(齋)를 올린 것을 감사하는 신종제(神宗帝)의 칙서(勅書)이다.

칙서(勅書). 고려국왕 왕휘(文宗)께서 김양감등을 시켜 중서성에 이르러 아뢰었던 대상국사(大相國寺), 흥국사(興國寺), 계성사(啓聖寺), 사주(泗州)의 보조왕사(普照王寺), 항주(抗州)의 천축사(天竺寺), 윤중(潤州)의 금산사(金山寺), 등에서 재(齋)를 베풀어 성수(聖壽)를 축원한 일를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卿(文宗)이 황실조정을 따르고 불교에 귀의(歸依)하여 가르침을 숭상하고 본받으려하여 배편으로 공물을 바치고 사찰(寺刹)에 나아가 축수(祝壽)드린 일을 모두 알고 나니 그대의 충성과 정성스런 노력에 더욱 두터운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이 글을 보내어 나의 마음을 마땅히 다 알리고자 합니다.
따뜻한 봄날 卿의 건강은 어떠하십니까.
글을 보내지만 못다 한 말이 많습니다.

나). 이 글 역시 <宋大詔令集>237 政事90 4裔10 高麗에 있는 글이다.

칙서(勅書). 고려국왕 王徽(文宗)께서 김양감등을 시켜 중서성(中書省)에 이르러 표문(表文)을 올려 의약(醫藥)과 도화공(圖畵工)을 요청한 일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경(傾)이 삼한(高麗)의 땅을 지키면서 중국의 풍속을 본받고자 연이은 글로 주청(奏請)의 뜻을 드러내고 재주 있는 인재(人才)를 구하려 하기에 관계관을 시켜 더욱 정밀히 가려뽑게 하였고 특히 간절한 요청에 따라 사사로운 은혜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요청하신 의약과 도화공은 이미 발운사(發運使) 나극(羅極)을 시켜 선발하게 하였고 색장나인(色掌內人)을 보내어 행장(行裝)을 수습(收拾)하게 하여 미리 보내드렸습니다. 그러기에 이 글을 보내어 나의 마음을 마땅히 다 알리고자 합니다..
따뜻한 봄날 경(傾)의 평소 건강은 어떠하십니까.
글을 보내지만 못다 한 말이 많습니다.

다). 이 글은 <海東繹史> 卷12, 世紀12에 있는 글이다.

1074년(文宗 28)에 고려왕(文宗)이 그의 신하 김양감을 보내어 다녀갔다. 이 때 고려인들이 중국에 왕래하면서는 모두 등주(登州)를 경유해 왔는데, 와서 아뢰기를 ‘거란과 멀리 하고자 하니 길을 바꿔 명주(明州)를 경유해 예궐(詣闕)할 수 있도록 하여달라’ 고 청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郡 縣에서는 고려의 사절(使節)을 접대하는 옛 준례가 없어서 백성들이 자못 괴로워 하였다. 이에 詔勅을 내려 법식(法式)을 세워 반포하였으며 접대하는데 필히 사사로이 거래할까 염려하여 고려의 사신이 이르는 곳마다 왕래를 금지 시켰다.
王徽(文宗)께서 중서성과 추밀원에 선물하는 것이 매우 많았으므로 詔勅을 내려 시장에서 교역하여 겸백(?帛)을 사서 보답하게 하였다. 또 표문을 올려 의약을 구하고 화소공(畵塑工)을 파견하여 고려인들을 가르쳐 주기를 청하였는데 나증(羅拯)에게 조칙을 내려 고려로 가기를 원하는 자를 모집하도록 하였다.

* 나) 글에는 羅極으로 되어 있으나 다) 글에는 羅拯으로 되어 있으니 필시 한쪽은 寫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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