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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여행 ③ (諱 良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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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암 작성일07-01-02 23:28 조회1,4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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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문종 24년(1070) 1월
기유(己酉)에 김양감(金良鑑)으로 상서 우승(尙書右丞)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를, 이정공(李靖恭)으로 한림 학사(翰林學士)를, 김공(金拱)으로 우부승선(右副承宣)을, 박덕영(朴德英)으로 우보궐(右補闕)을, 강안서(康安庶)로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김예(金銳)·김상기(金上琦)로 좌우보궐(左右補闕)을 삼았다.
己酉, 以金良鑑, 爲尙書右丞左諫議大夫, 李靖恭, 爲翰林學士, 金拱, 爲右副承宣, 朴德英, 爲右補闕, 康安庶, 爲殿中侍御史, 金銳·金上琦, 爲左右補闕.

문종 24년(1070) 7월
을미(乙未)에 상서 우승(尙書右丞) 간의대부(諫議大夫) 김양감(金良鑑)으로 서북로 병마 부사(西北路兵馬副使)를 삼고 호부 시랑(戶部侍郞) 김약진(金若珍)으로 동북로 병마 부사(東北路兵馬副使)를 삼았다.
乙未, 以尙書右丞諫議大夫金良鑑, 爲西北路兵馬副使, 戶部侍郞金若珍, 爲東北路兵馬副使.

문종 25년(1071) 1월
신축(辛丑)에 김양감(金良鑑)으로 상서 좌승(尙書左丞)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를 삼고 노인(盧寅)으로 상서 우승(尙書右丞)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를 삼았다.
辛丑, 以金良鑑, 爲尙書左丞知御史臺事, 盧寅, 爲尙書右丞左諫議大夫.

문종 27년(1073) 8월
정해(丁亥)에 태복경(太僕卿) 김양감(金良鑑)과 중서사인(中書舍人) 노단(盧旦)을 송(宋)에 보내 사은(謝恩)하고 아울러 방물(方物)을 바쳤다. 송(宋)의 의원(醫員) 왕유(王愉)와 서선(徐先) 등이 돌아왔다.
丁亥, 遣太僕卿金良鑑·中書舍人盧旦, 如宋, 謝恩, 兼獻方物, 宋醫王愉·徐先等, 還.

문종 29년(1075) 12월
정미(丁未)에 이정(李정)으로 판서북면병마사(判西北面兵馬事)를, 김약진(金若珍)으로 판동북면병마사(判東北面兵馬事)를, 최유길(崔惟吉)과 김양(金陽)으로 상서 좌·우복야(尙書左右僕射)를, 유득소(柳得韶)로 공부 상서(工部尙書) 판사천태사국사(判司天太史局事)를, 노인(盧寅)과 김양감(金良鑑)으로 좌·우산기상시(左右散騎常侍)를, 최석(崔奭)으로 전중 감(殿中監)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를, 신수(愼脩)와 노사상(盧師象)으로 모두 시어사(侍御史)를, 김상기(金上琦)와 진잠고(陳潛古)로 좌·우보궐(左右補闕)을, 이준(李晙)으로 좌습유(左拾遺)를, 황사패(黃師覇)와 홍석(洪奭)으로 모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삼았다.
丁未, 以李정, 判西北面兵馬事, 金若珍, 判東北面兵馬事, 崔惟吉·金陽, 爲尙書左右僕射, 柳得韶, 爲工部尙書判司天太史局事, 盧寅·金良鑑, 爲左右散騎常侍, 崔奭, 爲殿中監知御史臺事, 愼脩·盧師象, ?爲侍御史, 金上琦·陳?古, 爲左右補闕, 李晙, 爲左拾遺·黃師覇, 洪奭, 爲殿中侍御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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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31년(1077) 11월
병진(丙辰)에 정유산(鄭惟産)으로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部事)를, 김행경(金行瓊)으로 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部事)를, 문정(文正)으로 참지정사(參知政事) 겸(兼) 서경유수사(西京留守使)를, 최유길(崔惟吉)로 수 사공(守司空) 판삼사사(判三司事)를, 김제(金悌)로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김양감(金良鑑)으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노인(盧寅)으로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삼았다
丙辰, 以鄭惟産, 判尙書禮部事, 金行瓊, 判尙書兵部事, 文正, 參知政事兼西京留守使, 崔留吉, 守司空判三司事, 金悌, 爲左散騎常侍知中樞院事, 金良鑑, 同知中樞院事, 盧寅, 爲禮部尙書.

문종 32년(1078) 6월
갑인(甲寅)에 송(宋)의 국신사(國信使)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안도(安燾)와 기거사인(起居舍人) 진목(陳睦) 등이 예성강(禮成江)에 이르거늘 병부 상서(兵部尙書) 노단(盧旦)에게 명하여 연반(筵伴)을 삼고 서교정(西郊亭)에 이르게 하였다. 또 중추원사(中樞院使) 형부 상서(刑部尙書) 김제(金悌)를 보내어 연반(筵伴)을 삼아 순천관(順天館)에 들게 하고,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호부 상서(戶部尙書) 김양감(金良鑑)과 예부 시랑(禮部侍郞) 이양신(李梁臣)을 관반(館伴)으로 삼았다.
甲寅, 宋國信使左諫議大夫安燾·起居舍人陳睦等, 到禮成江, 命兵部尙書盧旦, 爲筵伴, 至西郊亭, 又遣中樞院使刑部尙書金悌, 爲筵伴, 入順天館, 以知中樞院事戶部尙書金良鑑·禮部侍郞李梁臣, 爲館伴

문종 35년(1081) 1월
정유(丁酉)에 문정(文正)으로 장연현(長淵縣) 개국백(開國伯)을, 최석(崔奭)으로 이부 상서(吏部尙書)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김양감(金良鑑)으로 참지정사(參知政事) 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部事)를, 왕석(王錫)으로 호부 상서(戶部尙書) 지이부사(知吏部事)를 삼았다.
丁酉, 以文正, 爲長淵縣開國伯, 爲吏部尙書參知政事, 金良鑑, 參知政事判尙書兵部事, 王錫, 爲戶部尙書知史部事

문종 35년(1081) 3월
신축(辛丑)에 김양감(金良鑑)으로 권판중추원사(權判中樞院事)를 삼았다.
辛丑, 以金良鑑, 權判中樞院事.

문종 37년(1083) 1월
무자(戊子)에 이정공(李靖恭)과 최석(崔奭)으로 함께 중서 시랑(中書侍郞) 동 중서문하 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를 삼고 김양감(金良鑑)과 왕석(王錫)으로 좌·우복야(左右僕射)를 삼았다.
戊子, 以李靖恭·崔奭, ?爲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 金良鑑·王錫, 爲左右僕射.

선종 즉위년(1083) 12월
정축(丁丑)에 건덕전(乾德殿)에 거동하여 조회(朝會)를 보고 선덕전(宣德殿)에 퇴어(退御)하였는데 문하 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이정공(李靖恭)과 중서 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김양감(金良鑑)과 참지정사(參知政事) 왕석(王錫) 유홍(柳洪)이 시정(時政)의 득실(得失)을 진술하였다.
丁亥, 御乾德殿, 視朝, 退御宣政殿, 門下侍郞平章事李靖恭·中書侍郞平章事金良鑑·參知政事王錫·柳洪, 陳時政得失.

선종 3년(1086) 4월
계축(癸丑)에 이정공(李靖恭)으로 문하 시중(門下侍中) 판상서이부사(判尙書吏部事)를, 최석(崔奭)과
김양감(金良鑑)으로 모두 문하 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유홍(柳洪)과 왕석(王錫)으로 중서 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노단(盧旦)으로 상서 좌복야(尙書左僕射)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최사량(崔思諒)으로 중추원사(中樞院使)를, 문황(文晃)으로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삼았다.
癸丑, 以李靖恭, 爲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 崔奭·金良鑑, ?爲門下侍郞平章事, 柳洪·王錫, 爲中書侍郞平章, 盧旦, 爲尙書左僕射參知政事, 崔思諒, 爲中樞院使, 文晃, 知中樞院事.

선종 4년(1087) 3월
경진(庚辰)에 선정전(宣政殿)에 거동하여 정사(政事)를 보살폈는데 문하 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석(崔奭) 김양감(金良鑑)과 중서 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유홍(柳洪)이 시정(時政)의 득실을 진술하였다.
庚辰, 御宣政殿, 視事, 門下侍郞平章事崔奭·金良鑑·中書侍郞平章事柳洪, 陳時政德失.

선종 4년(1087) 5월
갑술(甲戌)에 최석(崔奭)으로 수국사(修國史)를, 김양감(金良鑑)으로 판상서호부사(判尙書戶部事)를, 최사량(崔思諒)으로 참지정사(參知政事) 겸(兼) 서경유수사(西京留守使)를 삼았다.
甲戌, 以崔奭, 修國史, 金良鑑, 判尙書戶部事, 崔思諒, 參知政事兼西京留守使.

선종 4년(1087) 7월
임신(壬申)에 선정전(宣政殿)에 거동하여 시사(視事)하였는데 최석(崔奭) 김양감(金良鑑) 유홍(柳洪) 최사량(崔思諒)이 시정(時政)의 득실을 진술하여 아뢰었다.
壬申, 御宣政殿, 視事, 崔奭·金良鑑·柳洪·崔思諒, 奏陳時政得失.

선종 4년(1087) 12월
경인(庚寅)에 최석(崔奭)으로 수 태위(守太尉) 판상서이부사(判尙書吏部事) 감수국사(監修國史)를,
김양감(金良鑑)으로 수 태위(守太尉)를, 유홍(柳洪)으로 수 사공(守司空)을, 최사량(崔思諒)으로 수국사(修國史)를, 문황(文晃)으로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이자위(李子威)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김충의(金忠義)로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박인량(朴寅亮)으로 한림 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를, 이예(李預)로 한림 학사(翰林學士)를 삼았다
庚寅, 以崔奭, 守太尉判尙書吏部事監修國史, 金良鑑, 守太尉, 柳洪, 守司空, 崔思諒, 修國史, 文晃, 知中樞院事, 李子威, 同知中樞院事, 金忠義, 爲戶部尙書, 朴寅亮, 爲翰林學士承旨, 李預, 爲翰林學士.

[고려사(高麗史) 지(志) 선장(選場) ② ]

....[선종(宣宗)] 7년 4월에 문하 시랑(門下侍郞) 김양감(金良鑑)이 지공거(知貢擧)가 되고 간의대부(諫議大夫) 손관(孫冠)이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進士)를 뽑고 복시(覆試)하였으며 하조(下詔)하여 을과(乙科) 이경비(李景泌) 등 3인과 병과(丙科) 9인과 동 진사(同進士) 14명과 명경(明經) 2인과 은사(恩賜) 3인에게 급제(及第)를 사(賜)하였다....
七年四月, 門下侍郞金良鑑, 知貢擧, 諫議大夫孫冠, 同知貢擧, 取進士, 覆試, 下詔賜乙科李景泌等三人·丙科九人進士十四人·明經二人·恩賜三人及第.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손관(孫冠) ]

.......선종(宣宗) 때에 우간의(右諫議)가 되어 문하 시랑(門下侍郞) 김양감(金良鑑)과 더불어 장시(掌試)하여 진사(進士) 이경비(李景泌) 등을 취하였는데 이경비의 답안(答案)이 격(格)에 맞지 않는 까닭으로 시의(時議)가 그 주사(主司)의 밝지 못함을 기롱(譏弄)하였다.....
文宗朝, 擢第, 累遷左補闕, 自是, 揚歷淸要, 宣宗時, 爲右諫議, 與門下侍郞金良鑑掌試, 取進士李景泌等, 景泌程文不合格, 時議譏其主司不明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김약온(金若溫)]

김약온(金若溫)의 자(字)는 유승(柔勝)이요 초명(初名)은 의문(義文)으로 광양현(光陽縣) 사람이니 시중(侍中) 김양감(金良鑑)의 아들이다
金若溫, 字柔勝, 初名義文, 光陽縣人, 侍中良鑑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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