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자료

고려사 여행 ⑤ (諱 若溫)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암 작성일07-01-03 01:32 조회1,500회 댓글2건

본문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예종 8년(1113) 12월
......(병진) 김약온(金若溫)으로 지상서도성사(知尙書都省事)를 삼고, 박경작(朴景綽)으로 전중 감(殿中監) 한림 학사(翰林學士)를 삼고, 왕자지(王字之)로 예빈 경(禮賓卿)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삼았다.
金若溫, 知尙書都省事, 朴景綽, 爲殿中監翰林學士, 王字之, 禮賓卿樞密院知奏事.

예종 11년(1116) 4월
계미(癸未)에 지서경유수사(知西京留守事) 호부 상서(戶部尙書) 김약온(金若溫)에게 명(命)하여 호종(扈從)하게 하고, 조영구(趙令龜)로 섭 분사 호부 상서 지유수사(攝分司戶部尙書知留守事)를 삼았다.
癸未, 命知西京留守事戶部尙書金若溫, 扈駕, 以趙令龜, 攝分司戶部尙書知留守事.

예종 12년(1117) 6월
경진(庚辰)에 김연(金緣)으로 문하 시랑(門下侍郞) 동 중서문하 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상주국(上柱國)을 삼고, 김준(金晙)으로 판형부사(判刑部事)를 삼고, 김지화(金至和)로 판공부사(判工部事)를 삼고, 이궤(李軌)로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삼고, 임유문(林有文)으로 상서 우복야(尙書右僕射) 판비서성사(判秘書省事)를 삼고, 박경인(朴景仁)으로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삼고, 김약온(金若溫)으로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삼고........
庚辰, 以金緣, 爲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上柱國, 金晙, 判刑部事, 金至和, 判工部事, 李軌, 判三司事, 林有文, 爲尙書右僕射判爲尙書右僕射判爲尙書右僕射判?書省事, 朴景仁, 爲吏部尙書, 金若溫, 爲戶部尙書,

예종 17년(1122) 3월
경오(庚午)에 김준(金晙)으로 수 사도(守司徒) 판예부사(判禮部事)를 삼고, 임유문(林有文)으로 수 사공(守司空) 참지정사(參知政事) 판형부사(判刑部事)를 삼고, 왕자지(王字之)로 이부 상서(吏部尙書) 참지정사(參知政事) 판호부사(判戶部事)를 삼고, 한안인(韓安仁)으로 참지정사(參知政事) 판공부사(判工部事)를 삼고, 최홍재(崔弘宰)로 추밀원 사(樞密院使)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삼고, 김약온(金若溫)으로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를 삼고...
庚午, 以金晙, 守司徒判禮部事, 林有文, 守司空參知政事判刑部事, 王字之, 爲吏部尙書參知政事判戶部事, 韓安仁, 參知政事判工部事, 崔弘宰, 爲樞密院事判三司事, 金若溫, 知樞密院事

인종 즉위년(1122) 5월
을해(乙亥)에 이자겸(李資謙)으로 수 태사(守太師) 중서령(中書令) 소성후(邵城侯)를 삼고, 김경용(金景庸)으로 낙랑군 개국공(樂浪郡開國公)을 삼고, 이장(李璋)으로 계양공(桂陽公)을 삼고, 임유문(林有文)과 김준(金晙)으로 문하 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삼고, 한안인(韓安仁)으로 중서 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삼고, 최홍재(崔弘宰)·김약온(金若溫)으로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삼고.....
乙亥, 以李資謙, 守太師中書令邵城侯, 金景庸, 爲樂浪郡開國公, 李瑋, 爲柱陽公, 林有文·金晙, 爲門下侍郞平章事, 韓安仁, 爲中書侍郞平章事, 崔弘宰·金若溫, 參知政事

인종 1년(1123) 12월
병오(丙午)에 김지화(金至和)로 판병부사(判兵部事)를 삼고, 임유문(林有文)·최홍재(崔弘宰)로 문하 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삼고, 김약온(金若溫)으로 중서 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삼고...
丙午, 以金至和, 判兵部事, 林有文·崔弘宰, 爲門下侍郞平章事, 金若溫, 爲中書侍郞平章事


인종 2년(1124) 12월
갑자(甲子)에 임유문(林有文)으로 검교 태보(檢校太保) 수 태위(守太尉) 판상서호부사(判尙書戶部事) 상주국(上柱國)을 삼고, 김약온(金若溫)으로 검교 사도(檢校司徒) 수 사공(守司空) 문하 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상주국(上柱國)을 삼고....
甲子, 以林有文, 檢校太保守太尉判尙書戶部事上柱國, 金若溫, 檢校司徒守司空門下侍郞平章事上柱國

인종 17년(1139) 11월
신축(辛丑)에 김약온(金若溫)으로 수 태부(守太傅) 문하 시중(門下侍中) 판호·예부사(判戶禮部事)를 삼고, 인하여 치사(致仕)하게 하였다.
辛丑, 以金若溫, 守太傅門下侍中判戶禮部事, 仍令致仕.

인종 18년(1140) 2월
임술(壬戌)에 문하 시중(門下侍中)으로 치사(致仕)한 김약온(金若溫)이 졸(卒)하였다
壬戌, 門下侍中致仕金若溫, 卒

[고려사(高麗史) 지(志) 선장(選場) ②]

....(인종) 2년 4월에 중서 시랑(中書侍郞) 김약온(金若溫)이 지공거(知貢擧)가 되고 병부 시랑(兵部侍郞) 김부식(金富軾)이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進士)를 뽑고 고효충(高孝沖) 등 37인에게 급제(及第)를 사(賜)하였다.
(仁宗) 二年四月, 中書侍郞金若溫, 知貢擧, 兵部侍郞金富軾, 同知貢擧, 取進士, 賜高孝?等三十七人及第.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김약온(金若溫)]

김약온(金若溫)의 자(字)는 유승(柔勝)이요 초명(初名)은 의문(義文)으로 광양현(光陽縣) 사람이니 시중(侍中) 김양감(金良鑑)의 아들이다. 학문을 힘써 등제(登第)하여 상의 봉어(尙衣奉御)로부터 광주 통판(廣州通判)이 되었다가 들어가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고 합문사(閤門使)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하였다.

인종(仁宗)이 즉위하매 중서 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배(拜)하고 검교 사도(檢校司徒) 수 사공(守司空) 상주국(上柱國)을 더하였다. <인종> 18년에 문하 시중(門下侍中)으로 치사(致仕)하여 죽으니 나이 82세요 사정(思靖)이라 시(諡)하였다. 성품이 공검(恭儉)하고 염정(廉靜)하여 일찍이 부귀로써 남에게 교만하지 않고 이자겸(李資謙)이 국구(國舅)로써 국사(國事)에 당하매 이(利)를 좋아하는 선비가 다투어 붙이는데 김약온은 이자겸과 당형제(堂兄弟) 간인데도 서로 어울리지 않으니 세상이 그 정의(正義) 지킴을 놀랍게 여기었다. 아들은 김선(金璇)이다.

金若溫, 字柔勝, 初名義文, 光陽縣人, 侍中良鑑之子, 力學登第, 自尙衣奉御, 通判廣州, 入拜中書舍人, 歷閤門使知樞宓院事參知政事, 仁宗卽位, 拜中書侍郞平章事, 加檢校司徒守司空上柱國, 十八年, 以門下侍中致仕, 卒, 年八十二, 諡思靖, 性恭儉廉靜, 未嘗以富貴驕人, 李資謙, 以國舅當國, 士之喜利者爭附之, 若溫與資謙, 爲堂兄弟而不相比, 世多其守正, 子璇.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김부식(金富軾)]

....왕이 이자겸의 조고(祖考)를 추봉(追封)하매 박승중(朴昇中)이 이자겸에게 잘 보이고자 하여 분황(焚黃)하는 날에 교방(敎坊)의 악(樂)을 하사할 것을 청하거늘 김부식이 이르기를,“종묘(宗廟)에 악(樂)을 쓰는 것은 평생(平生)을 형상함이요 만약 분묘(墳墓)같으면 소복(素服)으로 종사(從事)하고 울기까지 하거늘 어찌 악(樂)을 쓰리요.”라고 하였다. 박승중(朴昇中)이 또 이자겸의 생일을 이름하여 인수절(仁壽節)을 삼고자 하거늘 김부식이 말하기를,
“생일을 절(節)이라 칭함은 옛적에는 없는 바이요 현종(玄宗) 때에 비로소 황제(皇帝) 생일을 칭하여 천추절(千秋節)을 삼았고 인신(人臣)이 절(節)을 칭함은 듣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하니
평장사(平章事) 김약온(金若溫)이 말하기를,“시랑(侍郞 김부식을 가리킴)의 말이 옳다.”고 하였다.....
王, 追封資謙祖考, 昇中欲媚資謙, 請焚黃日賜敎坊樂, 富軾以爲, 宗廟用樂, 象平生, 若墳墓, 則以素服從事, 至於涕泣, 豈可用樂, 昇中又欲號資謙生日爲仁壽節, 富軾言, 生日稱節自古所無, 唐玄宗時, 始稱皇帝生日爲千秋節, 未聞人臣有稱節者, 平章事金若溫曰, 侍郞議善,

댓글목록

성봉님의 댓글

성봉 작성일

성봉 (2006-06-25 14:26:38) 
 
위 김약온 전은 고려사열전 권10 에 있는 기록으로
' - - - 歷閤門使知樞宓院事參知政事' 라 하여 인종즉위 전에 참지정사를
배수하였다 하였으나 고려사 본기에 의하면 인종이 즉위한 1122년 5월에
참지정사를 배수하였으니 위 열전기록은 오류라 할 것입니다.

성봉님의 댓글

성봉 작성일

성봉 (2006-06-26 17:19:23) 
 
思靖公 諱 若溫의 女壻 尹彦이 墓誌文에 依하면
公은 <推忠守正安社功臣>이시다.

보학자료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