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산김씨 관적의 시원(光山金氏 貫籍의 始原)

 

우리들 모두는 자기를 중심으로 한 각자의 성씨를 갖고 있다. 성씨는 본인이 선택하거나 취득한 성과물이 아니다. 조상으로부터 대물림 받은 것이다. 따라서 성씨를 같이한 후손들을 종족이라 하며 종족이란 가족의 집합채이며 가족이란 종족의 한 단위로써 우리는 종족을 총칭하여 일가라고 한다.

 

혈연을 같이한 일가들이 모여 조상을 숭앙하고 유허지를 보존 관리하며 공덕과 유훈을 후세에 전승함은 후원보본의 도리로써 이를 종사라고 한다. 씨족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하여 가문의 명예와 전통을 자자손손 계승시켜 긍지와 사명감을 고취 함양함을 보학이라고 한다. 성씨와 후손이 있는한 종사와 보학은 계속될 것이다.

 

광산김씨 시조공의 사당은 전남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위치하고 있다. 노령산맥 태조봉을 주산으로 하여 서남으로 수백리 뻗어 내려온 산맥의 정기가 담양의 불대산 소조봉에 이르러 넓고 힘차게 펼쳐지면서 웅대한 장군봉을 이루고 수백리를 흘러온 물과 서로 만나 안고 돌아나가니 산수정기가 빼어난 곳으로 훌륭한 인물이 대를 이어 나올 명당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이곳을 만고대지라고 부르고 있으며 비기에 전하는 호남의 명당이라 한다.

 

소조산 불대산을 뒤로하고 안산 서석산은 높고 웅장하며 길고 큰 강물이 서로 만나 함께 흘러가니 산맥과 물줄기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형상이라 자손만대로 문무와 부귀가 끊이지 않을 대 명당이다. 불대산을 등지고 좌우로 산맥이 갈라져 흡사 병풍을 쳐놓은 것과 같고 청룡 백호가 양쪽 날개와 같기 때문에 불대산 봉우리를 봉황의 머리에 비유하여 전체의 전경을 봉황이 알을 품고있는 형상으로 표현하여 [비봉포란형(飛鳳抱卵]이라 부른다.

 

우리 시조공의 유업이 천이백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후손의 숫자가 백만을 헤아린다. 개기 이래 열성조들이 공명과 현달을 위해 이곳을 떠났다. 그러나 천지기운의 이치와 인륜존엄의 가치들이 상응하여 한 핏줄이 동기감응의 원리에 따라 근원 (평장사)에 모여 영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순리요, 윤회의 필연인 것이다.

 

남대천의 물줄기를 거스르는 연어의 행렬은 근원에의 회귀이다. 간난신고를 거쳐 입신양명하여 한시대를 풍미하고 후손들에 의해서 영령혼백의 귀환도 인간의 원초적 귀소본능일 것이며 자연의 순리일 것이다. 단지 연어가 다음세대로 가기 위한 죽음과 삶의 순환고리라면 우리인간의 경우는 근원에의 안착이라 할 것이다.

 

평장동은 광산김씨의 요람이다 그리고 광산김씨 관적의 시원이다 시조공의 음덕이 세세손손 들에게 유구할 것이다.

 

 

 ▣ 천년기지 팔세평장 (千年基址 八世平章)

 

유허비각

千年基址 八世平章

천년의 기지에 8세의 평장이 나오다

 

취사당

此乃吾金 始祖墟 至今樵牧 認幽居

平章有洞 家傳譜 冠帶名亭 樹表閭

周摯夏塗 祥屢毓 宋賢漢閥 代無墟

請看瑞石 佛臺上 蔥鬱萬年 氣自如

여기는 우리 시조공의 유허지이다 지금의 소치는 아이도 다 알고 있다.

평장의 동명은 가문을 자랑하고 관대의 정자는 수림 속에서 빛난다.

긴역사 축복으로 가득하고 명문의 전통 대대로 이어 진다.

서석산과 불대산이 서로 감응하니 번영 만년의 기운 역서 시작한다.

 

경모재

鼻祖當年 卜此鄕 山川靈秀 發長祥

雄鎭三朝 峰瑞石 相承八世 洞平章

萬折派分 同本地 千年址古 數間堂

從今團會 修先志 營建宗規 百代光

옛날 우리 선조께서 이 고장에 오시니 산천정기 이리여 발상지 되었도다

삼한의 으뜸 터라 산 이름도 서석이요 팔세의 평장사가 마을 이름 불러왔다 만 갈래 잘려도 근본은 하나로 천년의 옛터에 종당과 사우를 세웠다

울 겨래 일 모여 선조 뜻 받들어 종규 잘 지키여 백대에 빛 나리

 

수존재

楡谷牧笛 佛臺落霞

瑞石歸雲 牛峙朝煙

花巖齋月 葛田暝雨

艾稿明沙 龍江漁火

유곡에 목동의 피리소리 들리고

불대산에 지는 낙조 아름답다

무등산에 힌 구름 떠가고

우치에 아침 연기 피어 오른다

화암에 밝은 달 떠오르고

갈전에 보슬비 내린다

애고의 맑은 모래와

황룡강의 고기잡이 불빛이 아름답다

 

 

 ▣ 광산김씨는 명문화벌이다

 

광산김씨 역사는 평장동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역사는 천년이 넘고 지금의 후손이 백만을 헤아린다. 장구한 역사의 변천 속에서 영욕과 부침을 거듭하면서 명문화벌로 성장 발전하였다.

 

시조할아버지 김흥광은 장차 국란을 예지하고 왕자의 지위를 버린 채 이곳  평장동에 둔세우거 하시어 후손들의 번영을 마련하여 주셨다. 할아버지의 음덕에 기인하여 후손들이 번창하여 삼한갑족, 명문거족, 예문종가로 자리매김되고 있으며 명신거유와 충의열사들이 줄을 잇고 동방이학의 종사 문안공 김양감 선생님, 조선예학의 태두이며 기호학파의 거두이신 사계 김장생 선생님이 유학의 대통을 계승하고 국민순화와 학문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광산김씨 조상님들은 어떠한 역사적인 사건속에서도 대의와 명분을 생명력으로 하여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한 명문의 전통은 역사속에 찬란하다. 겨레의 스승을 제사하는 문묘배향 18현 중 광산김씨 조상님이 두분이나 되고 또한 부자 명현으로 유명하다. 종묘에 배향된 보익공신이 세분이고 전국 쉰한개의 서원에서 여든두분의 조상이 배향을 받고 있다

 

삼정승이불여일대제학 이라는 대제학이 열한분이며 예문관, 홍문관 양대제학이 일곱분이고 형제대제학, 삼대대제학 배출가문은 광산김씨 뿐이다. 상신으로는 고려조 12평장을 비롯하여 조선조에 영의정이 두분, 좌의정이 한분, 우의정이 두분이며, 관리의 표상인 청백리가 네분 이고, 인재의 등용문인 호당이 세분이며, 부조묘가 열세분, 시호를 받으신 분이 쉰여섯분이다. 등단에 오른 대장이 아홉분이요, 임금 앞에서 경서를 강의한 경연관이 열두분이며, 조선조 문과 급제자가 이백예순 다섯분이다.

 

인후온화한 부덕이 조선 제일의 왕비였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생을 마친 숙종왕비 인경왕후와 여원동정 연합군 창설시 소용대장군 우부도통 문숙공 김주정 군함 900척 건조의 총책 양간공 김연, 국왕의 시호에 충성충자를 붙여야했던 속국의 진공사 신분으로 원나라 황제와 당당히 맞선 문정공 김태현, 부자가 정승으로 화평부원군과 우정승을 지낸 아버지 충숙공 김심, 아들 화평부원군 김석견, 무소불위한 부패권력을 응징한 김광철, 요승 신돈을 죽이기 위해 결사체를 만들었다가 오히려 해를 당한 김정과 김흥조, 역성혁명을 반대하고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김약시와 김자진,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위난을 구하였던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장군을 비롯하여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 외세의 침략과 숱한 국란의 현장에서 순절로 충절을 지킨 수많은 조상님과 음률에 밝아 아악을 정리한 김첨, 인수방에서 살았다 하여 인수체로 불리우는 조선의 명필 자암 김구, 조선향약의 효시 김문발, 어머님을 위하여 유배지에서 구운몽을 쓰고 임금의 방탕함을 바로잡기 위하여 사씨남정기를 쓰는 등 충효를 위한 목적소설로 우리 근대 소설문학사에 찬연한 업적을 남기신 서포 김만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한 동방의 화벌 명문가이다.